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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원 적응기 3
기숙학원 입교생이 낯선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기숙학원에 들어온 지 이틀째 한 학생이 ‘잠을 설쳤어요’ ‘아직 화장실을 가지 못했어요’ ‘새로운 수업환경에 적응이 어렵네요’ 등 신규학생에게서 자주 듣는 말들이다. 그 학생이 1주일 쯤 지나면 ‘많이 좋아 졌어요’라는 말을 한다. 대개는 약 1주에서 2주 정도의 기숙학원 생활 적응기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 생활 적응이 끝나고 학습 분위기에 적응이 된 학생은 ‘선생님 질문 좀 할게요’ ‘제 생각에는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 것이 좋을 듯…’ ‘선생님 건의할 게 있습니다.’ 등과 같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을 한다.
인간의 삶이란 바로 적응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도 따뜻한 엄마의 뱃속에서 이 차가운 세상으로 나올 때부터 이미 적응의 기제는 작동되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보호받던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면서부터 아기들은 자기 힘으로 숨을 쉬어야 하고, 젖을 빨아야 하며 변화무쌍한 이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기숙학원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면서 성장하는 인간
그러나 인간은 갓난아기 때부터 주변 환경을 그대로 수용하고 적응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갓난아기는 적극적으로 주변 자극에 반응하고 신호를 보냄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반응하도록 유도한다. 즉, 적응이란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다가감이 아니라, 자신과 환경, 쌍방 간의 움직임이다. 이렇게 적응은 나를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면서 나의 여러 측면의 확장을 가져온다. 즉, 성장하면서 운동능력과 인지능력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접하는 세상도 차츰 넓어지며, 우리의 내적 욕구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태껏 우리를 보호해주던 엄마의 태도와 외부 환경도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면서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발달과정에는 몇 단계의 큰 전환점이 있다. 2~3세 경, 엄마로부터의 분리-개별화하는 단계, 의존과 독립의 갈등과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계인 청소년기, 그리고 본격적인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단계인 30대, 신체적 노화와 사회적 역할의 변화를 수용하는 단계인 40~50대, 늙는다는 것과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인 60~70대 등이다. 이들 단계는 우리의 정체성과 역할이 달라지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발달전환기에 적응방식 - 동화와 조절
그런데 각 전환기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요구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자신에게 새롭게 부여되는 역할, 이전과 닮았지만 다른 환경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과제,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인생에 대해서 이해해야 하는 과제 등등. 이전과 다른 패러다임에서 움직이는 낯선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남들보다 먼저.
이렇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나 행동 양식, 철학, 가치관 등이 형성된다. 심리학자 피아제(J. Piaget)는 인간의 사고의 발달 과정 역시 적응의 한 과정이라 설명하면서, 여기에는 동화(Assimilation)와 조절(Accomodation)의 두 가지 적응방식이 작용한다고 했다. 동화(Assimilation)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 그것을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지구조에 맞춰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즉, 내가 이미 갖고 있던 어떤 사고의 틀에 따라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고 자신의 인지구조에 맞게 융화시키려는 노력을 말한다. 반면 조절(Accomodation)은 기존의 자기가 갖고 있던 인지구조로는 새로운 상황이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사고의 틀을 수정, 보완,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다리가 4개인 것은 개다”라는 도식이 있을 때, 개를 보고 ‘다리가 4개니까 개구나.’하는 것은 동화이다. 그러나 고양이를 보고 다리가 4개인데도 개가 아닌 것을 알게 되면, 다리가 4개인 것이 무조건 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도식을 수정하게 된다. 이것이 조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화와 조절은 어느 한 쪽이 크거나 작아서는 안 되고 평형 상태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의 양적, 질적 팽창이 일어나고 사고가 균형 잡히게 발달하게 된다. 피아제는 아동기의 인지발달을 설명하기 위해 이 모델을 고안해냈지만 이러한 사고의 발달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쭉 계속된다.
기숙학원도 발달 전환기 - 자신의 방식을 내세우고, 순응할 때는 순응하는 자세
특히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진학, 대학졸업과 취업,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기에는 바로 본격적으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전환기이다. 이 때 많은 것이 변한다. 대학진학과 진로결정, 직장생활 등 모든 것이 처음이고 전혀 새로운 상황인 것이다. 특히 대입 재수생은 진로가 결정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정서적 물리적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 있다. 더구나 기숙학원을 선택한 학생들 중에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과 인간관계 속에서 정서적으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이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조절과 동화가 적절히 평형상태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성장이 가능하다. 그래야 정서적 안정과 인간관계의 안정,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대학 진학에 성공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조절과 동화의 평형 상태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해서, 이러한 발달이 사고 뿐 아니라 기숙학원 안에서의 행동방식이나 인간관계 등 다른 면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즉 나의 기존 생활 방식이나 행동 양식에 의거해 자신이 처한 기숙학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틀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나의 낯설고 전혀 새로운 다른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나 생활방식에 따라 자신의 기존의 틀을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서도 균형이 필요한데, 자신의 틀만을 고집하여 다른 사람이 처한 환경을 해석하고 반응하려 하면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고집쟁이, 융통성이 사라져 다른 이가 접근하기 힘든 뻣뻣한 사람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 경우 가장 큰 위험성은 성장과 확장의 기회를 상실한다는 점에 있다. 반면 새로운 사람이나 환경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틀을 버리고 그 방식에 맞추려 하다보면 자신의 개성은 사라지고 그저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색이 변하는 줏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점은 ‘자기’를 상실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self)’를 억압해버리고 남의 것만 받아들이면 소외되고 무시당한 ‘자기’는 언젠간 분노로 폭발해버려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절과 동화는 50대 50의 비율로 일어나는 것이 좋다. 즉 기존의 자기의 방식을 내세울 때는 내세우고, 자신의 틀을 깨트려야 할 때는 과감히 깨트리는 자세를 갖는 것이 스스로를 더욱 확장하고 성장하는 길이다. 부언해서 말하자면 기숙학원 안에서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기도 하고, 기숙학원 안의 환경과 인간관계에 순응해야 할 때는 순응하면서, 자기주장과 환경과의 타협을 적절하게 배분해 나가는 것이 대입 재수생이 좀 더 현명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며 학업에 성공하는 길이다.
기숙학원 안에서의 적응은 일방적으로 환경에 내가 맞추어가는 수동적인 자세만이 아니라 나에게 맞도록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쌍방적인 관계인 것이다. 즉 자신의 공부 환경에 대한 적극적 개선과 활용의 의지도 작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선생님이나 지도교사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적응에 실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