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름기숙 공지사항을 알려드립니다.
[부모교육2]
자녀가 학원에서 문제를 겪을 때 그 문제의 주인은 자녀다
용인종로 부원장 김갑중
다른 때 같으면 사리 분별력이 있고 수용적인 부모들도 자녀가 학원에서 곤경에 처하거나 그 문제를 가정으로까지 끌고 오면 감정이 상하게 마련이다.
학원에 입교한 학생들은 전보다 더 많은 관계를 맺고, 부모들은 자연 그것들에 관해 시시콜콜 듣게 된다. 더러 기쁨이나 성공에 대한 기분 좋은 메시지들도 있지만(“엄마, 나 오늘 새 친구 사귀었어. 이름이 민수데 정말 좋은 친구 같아”“이번 모의고사에서 수리 90점 받았어”), 아래와 같은 두려움, 실망, 퇴보, 실패, 딜레마 같은 언짢은 메시지들 또한 접할 수 있다.
“ 난 학원이 싫고, 담임 선생님도 미워 죽겠어”
“ 학원 아이들은 하나같이 쌀쌀맞아.”
“ 세상에 *** 선생님만큼 나쁜 선생님은 없을 거야.”
“ 우리 학원 부원장 선생님은 형편없는 사람이야. 학생들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니까”
“ 학생과 ***선생님은 바보야. 툭하면 나한테 시비야 웃긴데니까”
“ 공부를 해서 어디다 써 먹지? 학원에 다녀봤자 별 볼일 도 없는데 말이야.”
“ 우리 교실에서 나보다 더 바보 같은 애는 없을 거야.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자녀들이 기숙학원에서 외출 나와 곧잘 전해 주곤 하는 비언어적 메시지 - 문을 쾅 닫아 버리는 것, 부루퉁하게 있는 것,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 욕설을 내 뱉는 것, 한사코 함구하려는 것, 자꾸 슬슬 피하는 것, 노려보는 것, 한눈을 파는 것,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것, 흐느껴 우는 것 등도 사건의 발달까지야 될 게 없지만 여전히 부모의 심기를 거스른다.
학부모는 이런 유의 수백 가지 메시지들은 자녀가 상호작용을 시작하려 하거나, ‘저기,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문제가 있단 말이에요’하고 넌지시 알리는 나름의 방식임을 유의해야 한다. 이들 메시지는 저마다 자녀의 내면에서 어떤 문제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부호들이다. 자녀가 문제를 하나 겪고 있다는 단서이자 신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학부모는 필히 이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을 직사각형의 창의 윗부분에 두어야 한다.
[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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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소유의 문제 |
<--학원에서의 문제를 의미하는 메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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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분할선-> |
문제없음의 영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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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 (부모나 교사 소유의 문제) |
학원 문제를 안고 있는 자녀를 효과적으로 돕는 최상의 방책은 아이들이 그 문제의 주인이 되게 놔두는 것이다.
부모들은 거의 예외 없이 ‘ 저런 그래서야 쓰나!’하는 심경으로 자녀의 메시지에 즉흥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부모들은 자녀의 학원 문제를 곧 자기 문제로 인식하게끔 조건화되어 있다. 만일 자녀가 기숙학원에서 모종의 곤경에 처하게 되면 대다수 학부모는 자연 두려움, 염려, 실망감, 당혹감, 분노, 격분, 울화, 따위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부모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과 같다. “ 네 문제에 대해 제발 나한테 이야기 좀 하지 말라. 네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이런 태도로는 도무지 자녀에게 유능한 조력자로 비치기 어렵다.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라곤 고작, 엄마 아빠의 평화를 깨뜨린 건 내 불찰이요, 나는 부모에게 상처를 입히고 실망이나 안겨 주는 못난 아이요, 절대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설령 문제가 있다손 쳐도 절대 그 사실을 입 밖에 꺼내면 안 된다는 생각 같은 것들뿐이다. 결국 학부모는 조력자가 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영영 놓치고 만다. 학원 문제가 있다는 자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이나 이해와 상반된 감정을 품는 학부모는 감정이입하면서 그 문제를 경청해 줄 기분이 아니다.
분리성의 원칙은 온갖 대인 관계에 다 해당된다. 문제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려면 조력자는 반드시 도움 받는 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 문제를 직사각형 창의 윗부분에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자녀를 나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받아들여야하며, 아이가 문제를 안고 있다 해도 그것을 부모-자녀 관계에서 수용 가능한 사건으로 여겨야 한다.
자녀: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고 들어와서는 가방을 내던진다.) 그 학원 선생님들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내가 인터넷 강의를 꼭 필요하다고 해도 계속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잔소리해.
아빠: (참으며) 저런!
자녀: 그 선생님들은 자기네가 가르치는 것 말고는 학생들이 인강 들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니까 수업빠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해.
아빠: 그 선생님들이 너의 방식을 이해 못한다고 느끼는구나.
자녀: 그 말이 맞아요. 나에게 맞는 방식이 있는데 그리고 수업시간에 이해 못한 부분도 들을 수 있는데, 혼자서 2시간 3시간 잡고 있어도 답답하다니까요(얼굴을 찡그리며) 그리고 이왕 신청해 놓은 거 돈도 아깝잖아.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여러 선생님하고 상담하고 하라는 거야 시간만 흘러가는데
아빠: 아이구야, 절차가 복잡하다고 느끼는구나.
자녀: (긴 한숨을 토해 내면서)짜증나 그래도 담당선생님하고 의논해보고 다시 인강 신청해야지 뭐
아빠: 그래 선생님께 상담하고 차분히 결정하는 것도 좋겠구나
자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모처럼 외출 나왔는데 맛있는 것 좀 사주세요.
이 아버지는 적극적 듣기로 자신의 반응을 가두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녀가 옳고, 자녀의 학원 선생님들이 인강 수업 듣기에 대해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도 들었을 것이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맞장구치고 공감을 표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녀대신 학원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지 않았을까
학원 내 다양한 관계에서 비롯된 자녀 문제가(부모 아닌) 바로 자녀의 문제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부모는 자녀를 더 잘 도와 줄 수 있다. 당신의 자녀가 곧 당신은 아니다. 자녀 소유의 문제를 스스로 풀도록 도우면 도울수록 자녀는 점점 더 강인한 인간으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대다수 학부모들에게는 이 분리성의 원칙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 자녀는 부모의 연장선에 놓인 존재요, ‘부모를 꼭 빼다 박은 존재’요, ‘살과 피를 나눈 분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출처를 알길이 없는 이런 말도 항간에 떠돈다. “부모는 자기 자녀와 엉덩이를 맞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한 치도 떨어지지 못한 채 자녀와 공생하는 부모들은 그들에게 절대 유능한 조력자로 보탬을 줄 수 없다.
부모는 더 나이 많고 더 지혜롭기 때문에 자녀 문제의 소유권을 온통 도맡는 게 온당한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미국인 아버지의 발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그 애는 저의 자랑이자 기쁨이었고, 그 애는 거의 모든 사람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줄곧 A학점을 놓치지 않았고, 졸업생 동기들 가운데 수석 졸업자로 고별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교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주일 학교에서는 교사 노릇을 했다. 저는 제가 아이였을 적에는 꿈도 못 꾸던 온갖 특혜를 그 애가 모두 누릴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애는 대학2학년 때 돌연 자살을 했습니다. 제게 이렇게 적힌 유서를 남겼더군요. ‘아빠 저는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바로 아빠인 것만 같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뭐가 잘 못되었는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 애는 거기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거든요. 저는 남은 아들만은 제 마음대로 주형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그 애가 되었으면 하고 제가 바라는 게 무엇이든 간에 그 애 스스로 독자적인 인간이 되게끔 돕는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차츰 그것들을 습득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